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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Red, White & Royal Blue: 서로의 경계를 넘으며

'오만과 편견'식 줄거리로 수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편견이 가득한 리즈의 역할을 알렉스가,

오만이 가득한(하지만 알고보면 순정남..) 다아시의 역할을 헨리가 맡았다.

 

이런 류의 콘텐츠가 종종 절망의 골짜기에 주인공들을 처박고 비극으로 끝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상황을 조금 비틀어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너와 나 각각의 경계를 넘는 것임을. 

 

 

한바탕 케잌 소동으로 미합중국 대통령인 엄마에게 수치를 안겨다준 알렉스. 

그길로 영국 왕자 헨리에게 되돌아가 눈물의 화해쇼를 연기하게 되는데...

알렉스 : 내가 너보다 크다는 것만 알아둬.

헨리 : 난 네가 깔창 낀 것까지도 알고 있단다.

눈물쇼를 위해 각자의 디테일한 신상을 NDA(비밀유지협약서)로 주고받은 둘.

벼락치기를 한 알렉스를 지그시 눌러주는 헨리. 


 

눈물쇼를 위해 병원행사에 동참했다가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둘은 간이 청소도구실에 함께 갇히게 된다.

 

뒤엉킨 채 서로 공간을 확보하느라 정신없는 와중 헨리가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헨리 : 상탈 33 써?

알렉스 : 그런데?

헨리 : (혼잣말하듯) 말 되네

알렉스 : 그게 무슨 뜻인데?

헨리 :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말이야, 알렉스.

알렉스 : (무안하다는 듯이) 고맙다

 

 

 

표정을 찌푸리며 알렉스를 쳐다보는 헨리

헨리 : 날 왜 이렇게 싫어해?

알렉스 : 멜버른 기후 회의. 첫번째 밤 파티말이야.

              너한테 인사했더니 날 무슨 바퀴벌레 취급 하더라.

              그리고 넌 시종무관에게 '여기서 좀 꺼내줘' 라고 했지.

헨리 : (침울한 표정으로) 네가 듣고 있는 줄 몰랐어.

알렉스 : 그러니까 너도 그게 멍청했다고 인정하는 거네.

 

 

무언가 확인을 받으려는 알렉스의 뚫어지는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는 헨리.

헨리 : 내가 친절하지 못했어.

알렉스는 사과를 수락하듯 가볍게 턱을 끄덕이고 이내 시선을 옮긴다.

헨리 : 또 서운했던 건? 회의 말고.

당황한 알렉스는 괜히 몸을 뒤척인다.

 

가벼운 미소를 띄며 그를 쳐다보던 헨리, 새삼 놀라며 입을 연다.

헨리 : 맙소사. 그것뿐이었구나. 맞지?

헨리는 알렉스를 보며 활짝 웃는다.

알렉스 : 사소하게 만들지 말아줄래.

헨리 : (괜히 놀란듯) 음, 일부러라도 못하겠는걸. 이미 너무 사소해졌잖아.

뻘쭘한 알렉스의 입이 딱 벌어진다.

 

헨리 : 너 정말 그 옛날일을, 좀 심하긴 했다만, 아직까지 담아두고 있었다고?

알렉스 : (이내 못마땅하다는 듯 손사레를 치며) 알았어, 그렇다면야.

              그때가 공식적으로 내가 세상에 데뷔한 날이었다고.

              정말 무서웠거든. 네가 도와줄 수도 있었잖아.

 

가만히 듣던 헨리의 표정이 꽤 진지해지며 이내 입을 연다.

헨리 : (한숨을 쉰 뒤) 맞아.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핑계는 아니지만 그땐 모두에게 그랬어.

           아버지가 몇 달 전에 돌아가셨었어. 왕실은 날 돌려막기 바빴지.

           (살짝 웃으며) 분명히 하자면, '나 좀 꺼내줘' 라고 하지 않았어. 

            '나 여기서 나가야 될 것 같아' 라고 했지. 완전 뜻이 다르다구.

눈썹을 가볍게 치켜뜨며 왠지 미안해지는 알렉스.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 사면 행사를 위해 잠시 칠면조 한마리를 알렉스 방에 임시 보관하게 된 상황

새벽 3시 헨리는 불면증으로 잠못이루는 밤을 알렉스와 통화하며 보내게 되는데...

 

 

알렉스 : 왜 아직까지 안자는거야?

헨리 : 난 세계적인 불면증 환자니깐. 침대에서 강아지랑 Bake Off*을 보는 중이야.

*영국의 유명 베이킹 프로그램 

알렉스 : 왕실 사람들도 TV를 보는 지 몰랐네. 

헨리 : 우린 암호도 공유하는 걸.

알렉스 : 너 생각보다 더 사람같다.

헨리 : 칭찬으로 들을게.

 

알렉스 : 아니 그게.. 강아지 이름을 데이빗이라고 지을 사람처럼 안보여서 말해봤어.

헨리 : 사실 데이빗 보위를 따서 지어준 거야.

알렉스 : (놀라며) 뭐, 진짜?

헨리 : 응

알렉스 : 멋진데. 차라리 보위라고 하지 그래?

헨리 : 좀 뻔하잖아. 

알렉스 :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한테 혹시 놀랐던 적 있어?

헨리 : (곰곰이 무언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아니. 상상했던대로 넌 끔찍해.

가벼운 웃음을 날리는 헨리.

둘 사이 제법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


알렉스의 신년 파티에 초대된 헨리.

춤을 추는 알렉스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흥을 돋구려 술을 몇모금 마셔보지만 그의 눈에는 한 사람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새해를 함께 맞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헨리는 급히 자리를 뜬다.

 

그를 쫓아 밖으로 나온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알렉스 :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헨리 : 만약에 말이야. 네가 평범했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어?

          (중략)

          난 작가가 될거야. 파리에 살면서. 데이트도 더 많이 하겠지.

알렉스 : (피식 웃으며) 그래, 왕자님이라서 데이트하기가 여간 어려웠겠어. 

헨리 : 내가 사귀는 사람들은 관심이 안 가고, 내가 관심가는 사람들은 데이트를 할 수 없거든.

알렉스 : 무슨 말인지 원. 

 

눈을 질끈 감은 헨리는 이내 알렉스에게 다가간다.

헨리 : 전혀 모르는군.

 

 

천천히 알렉스의 머릿결을 깊게 휘감는 헨리의 손가락.

갑자기 정신을 차린 헨리는 짧게 미안하단 말을 남기고 떠난다.

눈이 수북이 쌓인 고목 아래 알렉스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혼란을 어느 정도 정리한 알렉스는 국빈만찬에서 헨리와 재회한다.

레드룸에서 그를 안절부절 기다리는 알렉스

헨리가 뻘쭘하게 들어오면서 중얼중얼 사과를 한다.

 

 

그에게 입을 맞추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헨리.

이내 신속히 알렉스에게 입을 맞춘다.

 

짧은 재회를 마치고 정식 만남을 갖기로 한 둘.

자정즈음 헨리가 알렉스의 방문을 두드린다.

 

 

농염한 표정의 알렉스가 늦었다고 장난섞인 타박을 한다.

 

소파에 엉켜 다급하게 입을 맞추는 둘.

알렉스 : 저기 언제부터...

헨리 : 좋아했냐고?

알렉스 : 응

헨리 : (연신 알렉스의 목에 입을 갖다대며) 멜버른 기후 회의. 첫 번째 밤 파티.

알렉스 : 와, 그때 일이 좀 많았네.

헨리 : 그러게 말이야.

알렉스 : 니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

헨리 : 너무 잘생겨서 싫더라.

 


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 헨리는 알렉스의 목에 걸린 열쇠에 대해 물어본다.

 

 

알렉스 : 오스틴에 있는 우리 집 열쇠야. 백악관으로 온 뒤부터 차고 다녔어.

헨리 :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음, 난.. 평생 열쇠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알렉스 : 왕자면 뭐, 잠긴 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거 아냐?

헨리 : 글쎄.

 

갑자기 할말이 있다는듯이 무릎을 꿇고 자세를 고쳐앉는 알렉스 

 

 

알렉스 : 저기 그냥 말해두는데..

헨리 : (집중하며) 뭔데?

알렉스 : (주저하듯이) 난... 아무래도 양성애자인 것 같아.

큰 고백이라도 되는듯이 긴장이 역력한 알렉스를 보고 슬쩍 웃는 헨리.

헨리 : 알겠어.

이내 그에게도 답변해달라는 눈빛의 알렉스.

 

 

헨리 : 아, 그냥 말해두는데 난 완전 메이폴*급으로 게이야.

*유럽 등지의 페스티벌에서 쓰이는 나무로 된 세로 기둥

알렉스 : (실소하며) 메이폴이 뭔지 모르겠어.

 

메이폴의 뜻을 설명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웃고있던 알렉스를 빤히 쳐다보는 헨리.

헨리의 손을 만지며 알렉스가 말한다.

알렉스 : 이런 거 다음에도 했으면 좋겠어.

헨리 : 나도.

          (갑자기 잡고있던 손을 놓으며 멋쩍게) 물론 가벼운 만남이어야겠지.

알렉스 : (이해한다는 듯이) 어, 당연하지. 보는 시선이 있잖아. 

헨리 : 니가 사랑에 빠져버리면 곤란해져서.

알렉스 :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와. 

헨리 : (곤란한 상황에 처한듯이) 잠깐만, 기다려봐. 내말은...

알렉스 : (말을 끊으며) 정신 차리세요, 폐하.

헨리 :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전하라고 했잖아. 얼마나 말해줘야 돼.

 

가볍게 알렉스를 소파 뒤로 밀친 헨리는 천천히 입을 맞춘다.

알렉스와 시선을 두어 번 주고받은 뒤 헨리가 말한다.

헨리 : 가야겠어.

무거운 움직임으로, 천천히 앞머리를 쓸며 걸어가는 헨리.

아쉬움에 둘은 동시에 입을 열고 헨리가 먼저 말한다.

헨리 : 윈저에서 다음 달에 자선 폴로 경기가 있어. (주저하며) 난, 어, 그러니까 내 게스트로 오면 어때?

알렉스 : (뜻밖이라는 듯이) 음...폴로를 할 줄 모르는데.

헨리 : (아쉬운 듯) 젠장. 그래, 뭐 괜찮아. 어차피 넌 경기를 안 할거니깐. 내가 할게. 구경만 해.

알렉스 : (미소를 띄며) 좋네. 그게 낫겠어.

헨리 : 동감이야.

 

남은 걸음을 마저 걸어 방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는 헨리.

재킷의 단추를 잠그며 알렉스를 지그시 바라본다.

이내 문이 닫히고 긴장이 풀린 알렉스는 소파에 푹 쓰러진다. 웃음을 머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