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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갖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_Wylan Van Eck

화학약품을 테스트하던 와일런의 가게에 제스퍼가 방문한다.
제스퍼 : 들어갑니다. 아무도 없나?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작은 탄성이 터지는 와일런. 몇초간 그를 바라보다 놀란 표정을 거둔다.
와일런 : 안녕하세요! (한껏 긴장한 들숨과 함께 웃음이 번지며) 
              당신이 올 줄 몰랐어요. 
그를 바라보는 와일런의 확장된 두 눈과 벌어진 입은 흥분을 한껏 머금고 있다.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내려오는 제스퍼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제스퍼 : 누구시라고? 
와일런 : (시선으로 그를 좇으며 다가간다) 우린... (이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와,와일런이요.
일말의 기대와 약간의 의심을 품으며 그를 바라보는 와일런.
 
그런 기대를 저버리듯이 그들 앞에 놓인 촛불을 가볍게 끄는 제스퍼
제스퍼 : 아니. 카즈가 왜 여기서 만나자고 했냐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는 와일런의 얼굴엔 걱정과 슬픔이 잔뜩이다.
시선을 돌려 정신을 차리고 답하는 와일런.
와일런 : 음.. (조심스럽게) 아무래도 제가 당신들의 폭탄제조자인것 같아요.
한껏 긴장한 와일런의 입은 어색하게 벌어져있고 당황한 두 눈이 제스퍼와 마주친다.
 
제스퍼 :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너라고? 그 기름 가득한 손으로 말이지.
와일런 : 글쎄요. 제가 좀 조심해서요. 
제스퍼가 만지작대던 유리병을 도로 뺏는 와일런.
제스퍼 : 조심하는 건 손가락 정도는 잃고 나서 배울 수 있는건데. (멀쩡한 와일런의 손가락을 쳐다본다)


 
한창 싸움이 벌어지는 길 한복판에서 제스퍼가 드디어 와일런을 기억한다.
제스퍼 : 잠깐, 우리 만났었잖아. 맞지?
와일런 : 맞아요, 근데..
총소리에 정신이 없는 둘.
제스퍼 : 나한테 스트룹와플까지 줬잖아.
와일런 : (약간의 분노와 함께) 그걸 지금 기억한다고요?


페카의 세컨하우스에 잠입한 둘.
제스퍼는 당연한 물음을 건넨다.
제스퍼 : 나한테 왜 말 안했는지 아직 알고 싶은데.
와일런 : 뭘요?
제스퍼 : 우리가 만났었다는거.
와일런 : (고장난 건반을 연신 누르며 한숨을 쉰다) 날 기억하지도 못했잖아요.
제스퍼 :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반론을 좀 하자면, 그땐 너무 어두웠어.
              (약간의 짓궂은 웃음과 함께) 그리고 깨어보니까 넌 벌써 가고 없었잖아.


알비의 집에서 직접 피아노시범을 보여주는 와일런
와일런 : 형 생각엔 알비가 조금만 더 연습하면 어, 이렇게도 연주할 수 있을거야.
 
나지막히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연주하는 와일런
약간의 의심섞인 표정을 한 제스퍼는 이내 그를 넋놓고 바라본다.
자신의 연주에 심취했던 와일런의 시선은 알비에게 잠시 미소와 함께 머물다 제스퍼에게 향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표정을 뒤늦게 감추는 제스퍼.


카즈의 계획에 따라 한바탕 전투를 경험한 와일런에게 제스퍼가 충고한다.
제스퍼 : 이건 네가 싸울 게 아니야, 알지.
              오명을 씻는다거나 카즈와 페카의 불화 등에 낄게 아니라고.
와일런 : (장난 섞인 턱짓을 하며) 지금 저 걱정해주는 건가요?
제스퍼 : 크로우 클럽이 없어질 때 표정 다 봤어. 넌 지금 어디에 휘말렸는지 모른다니까.
 
잠시 생각하던 와일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제스퍼를 빤히 쳐다본다.
와일런 : (무언가 결심한듯이) 네, 좋아요. (그에게 조금 가까워지며) 이젠 알아요. 
              이제 아무데도 안 갈거예요. 
그를 두고 성큼성큼 멀어지는 와일런. 잠깐 제스퍼를 뒤돌아보더니 이내 셸터로 들어간다.
제스퍼 : (못말린다는 듯이) 멋진 척 하기는.


카즈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귀가한 둘
와일런 :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때요?
제스퍼 : 끝내주지! 무한 가능성의 세상이랄까.
와일런 : 예를 들자면요?
제스퍼 : (신난듯이) 데카당스의 밤이나 클럽 큐뮬러스도 즐기기 좋지.
즐거운 표정의 제스퍼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와일런
              포피라는 친구가 블루 파라다이스에서 새 쇼를 한대. 내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말인데..
 
제스퍼를 넋놓고 바라보던 와일런. 잠시 기울였던 몸을 뒤로 빼고 그의 답변을 긴장하며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너도 와도 돼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테이블 밑으로 물건을 정리하러 몸을 숙이는 와일런.
그런 그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제스퍼.
와일런 : (잠시 테이블 위로 고개를 올리며) 그래요
제스퍼 : 어.. 저기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연신 와일런이 없어진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툭툭 친다)
 
와일런 :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로 다시 선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침을 꿀꺽 삼키며) 당신이 먼저 떠날 것 같아서 그냥 제가 먼저 간거예요.
제스퍼 : 오..(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그랬구나.. 알겠어. (테이블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와일런 : (멀어지는 그를 다급하게 쳐다보며) 아니, 그.. 당신같은 사람은 뭐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벌써 저만치 멀어진 제스퍼를 바라보며) 특히나 하룻밤 같이 잔 뒤라 전 그냥..
              빨리 저만 상처받는 상황을 끝내고 싶었던거죠.
 
제스퍼 : (참듯이) 그래 이해해. 솔직히 나에 대한 소문이 완전 거짓말은 아니야. 
그런 그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마는 와일런.
               난 혼돈을 좋아해. 인생을 통으로 도박에 걸어보는 거지. 뭐가 올지 모르는 그런거 말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옆 테이블 도구를 정리하러 가는 와일런.
                널 먼저 두고 떠났을지도 몰라.
와일런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는 제스퍼) 하지만 그건 널 알기 전이야.
도구를 정리하던 와일런은 천천히 집중하며 그를 쳐다본다.
                어떤 약속도 해줄 수 없어.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길지도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이건 말해줄게.
눈알을 굴리며 머뭇대는 제스퍼를 연신 아닌척 하지만 기대하며 듣고 있는 와일런.
                (와일런을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더니 이내) 나도 알아보고 싶어.
 
기대했던 답변을 받은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와일런. 고개를 조금 옆으로 숙여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초조한듯이 입술을 깨물며 안절부절하는 제스퍼.
제스퍼 : (답답하다는듯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그순간 그에게 달려가는 와일런.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스퍼에게 입을 맞춘다.
몇초 간의 입맞춤 후 와일런은 그에게 눈을 맞추며 천천히 미소를 지어준다.
 
제스퍼 : 저번보다 더 좋은데? 
그를 잽싸게 침대 쪽으로 잡아끄는 와일런.
와일런 : 아무래도 전부 다 기억나게 해줘야겠네요.


제스퍼와 재회했을 때 괜한 마음이 발동할까봐 아닌 척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던 와일런.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조금의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그의 마음이 마침내 자신을 바라볼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기회는 
첫날부터 
참았던 마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