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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미스터 로봇: 그럼, 이제 너하고 나네

 

 

 

작정하고 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초반의 삐걱거림을 잘 넘기고 완주할 수 있었다.

마치 퍼오인과 메멘토 등을 짜집기 해놓은 듯한 인상에 약간 냉소적으로 지켜보았는데,

이럴수가.

엘리엇과 타이렐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로맨스가 또 시작되다니, 한니발 이후로 다시 충격 받을 준비를 해야하나

벌써부터 쓸데없는 걱정이다.

하지만 이야깃감으로 쓰기에는 정신분열과 살인자만큼 아득히 달콤한 조합이 없지.

파멸의 길로 가는 가장 좋은 조합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선혈이 낭자한 한니발의 주옥같은 장면들을 떠올려보라. 죄책감마저 드는 황홀한 장면들 속에서 윌과 한니발은 그저 사랑에 빠진 연인일 뿐.

 

물론 아직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겠지만, 엘리엇과 타이렐의 사랑이 싹트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이 말도 안되는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글을 남기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스터 로봇> 9화는 엘리엇과 타이렐의 감정을 확인시켜주는 노골적인 에피소드였다.

대체 누가 저런 끔찍하게 로맨틱한 고백을 하냐고.

그렇다고 저런 살인자에게 모든 걸 보여줘버리는 엘리엇도 참, 시시하긴.

아니, 엘리엇은 워낙 외로운 인물이니까 이 정도는 타이렐과 감정을 확인하기 위한 애교에 불과하려나.

픽시즈의 'Where Is My Mind' 가 피아노 선율로 곱게 흘러나오면서 빠알간 조명 아래 카메라 앞에 위치한 두 인물은 너무, 그것도 너무 낭만적이다.

 

작가는 이제 이런 거 그만 만들라고. 자꾸 잘생긴 스웨덴 배우랑 애굣살 최강인 천조국 배우 가지고 이러지 말라고.

둘이 삼십이 넘었는데 이런 유치한 사랑고백 장면 같은 거 넣지 말라고 (사실 좋...좋습니다.)

 

<Mr. Robot> Season 1, Episode 9

 

(엘리엇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타이렐)

엘리엇...

자, 너의 큰 계획이 뭔진 나도 모르지만

난 알아야겠어, 그리고 넌 나한테 말해야 해.

 

이틀 전 난 한 여자를 목졸라 죽였지

내 두손으로 말이야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

엄청난 일이

너무 간단하게 일어났지 뭐야

 

처음 십 초간은

....불편했어

림보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근육이 긴장하고

그 여자가 버둥거리면서 저항하기 시작하면서

내 긴장은 순식간에 사라지더군

세상 모든 것과 함께 말이지

그 순간 그곳엔

나와 절대 힘만이 존재했어

단지 이 둘만.

 

그 순간은 나에게 남게 되었고

난 죄책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지

살인자가 된 것 때문에 말이야

 

그런데...난 그렇지 않아.

난 경의로움을 느껴.

 

<엘리엇이 타이렐에게 모든 것을 보여준 이후>

-너 정말 모든 걸 계획했구나.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나 뿐이야.

 

-그럼, 이제 너하고 나네.

내가 항상 말했지.

너하고 난 함께 일할 거라고, 엘리엇.

하지만 여전히, 난 알아야겠어.

왜 그런 거야?

이 모든 걸 하고 나면 무엇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모르겠어.

세상을 구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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